지나친 힐링문화, 꿀벌의 우화가 우려된다. 세상을 보는 나의 눈

지나친 힐링(Healing)문화, 꿀벌의 우화가 우려 된다.


- 2015년을 돌아보며,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치행태를 개선,

다가오는 병신년, 기업들에게는 경쟁을 통한 새로운 도약-


                              김 정 윤

 

 

  꿀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탐욕을 증오하고 늘 도덕적이며 정직한 사회를 꿈꾼다. 마침내 꿀벌들은 정의롭고 정직한 사회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꿀벌의 신()Jupiter에게 모든 꿀벌을 정직하고 도덕적인 꿀벌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한다. 이에 따라 Jupiter는 그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꿀벌들이 그토록 바라던 유토피아적 세상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꿀벌 사회는 전반적으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사치와 탐욕이 없어지면서 각종 재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되었으며 각자 직업에 종사했던 꿀벌들이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대다수의 꿀벌들은 도태되고 소수의 꿀벌들만 살아남게 되지만, 그들 역시 이웃 벌떼들의 공격을 받아 멸종하게 되었다.


  이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을 부제로 저술한 버나드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 1670~1733)꿀벌의 우화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비록 꿀벌의 사회에 빗댄 우화이지만 우리나라의 현 사회에 남기는 교훈이 많다. 진정한 평등의 의미를 외면한 체, 시장적 성격으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를 펼치는 꿀벌들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수호하려는 꿀벌과의 이념 논쟁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어 왔다.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러한 이념 논쟁이 종식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옳다고 봐야겠다. 한 국가의 경제와 국민은 이념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역사가 그것을 충분히 증명하기 때문에 이에 반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꿀벌의 우화를 미루어 볼 때, 후자의 이념만이 인류가 번영할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일종의 정권확보 및 상업적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된 도를 넘은 힐링문화는 자본주의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조짐이 보인다.

2014,5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 전염병처럼 퍼진 것이 바로 힐링(Healing)문화이다. 미디어 매체를 비롯해 길거리 벽보에서도 힐링은 빠지지 않으며, 힐링이라는 소재는 서점의 베스트셀러 흥행의 보증수표가 되었다. 힐링이란 몸과 마음에서 다친 부분이나 여린 곳을 치유해 건강하고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본원적인 뜻 자체만 놓고 보면, 세상은 늘 아름답고, 상처받으면 언제나 치유해줄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적절한 치유는 경제구성원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으며 경제사회에 이로운 편익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최근 몇 년 간의 지나친 힐링문화로 인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이념이 흔들리고 있다. 세상 모든 인간은 선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세뇌시키고, 장밋빛만 가득한 유토피아적 세상을 꿈꾸게 하고 있다. 특히, 일부 정권 세력들은 이러한 힐링문화와 경제민주화라는 모호한 개념을 결부시켜 정권확보를 위한 정치적 마케팅 수단으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미래를 짊어질 필자 또래의 청춘들과 국민들은 끊임없는 경쟁사회에서 오히려 인간 태초의 자생력마저 잃고 있다.


  많은 대중들이 요즘 힐링(Healing)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경쟁을 강조하는 이 땅의 자본주의에 환멸을 느낀다.”고 하소연한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힐링은 힐링(Healing)의 본질인 여가 및 자기 수양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에 대한 일종의 권태이다. 필자는 이러한 점이 대단히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무심코 스쳐가듯 생각할 수 있는 경쟁에 대한 환멸이, 지금과 같은 사회의 흐름으로 이어져 미래를 짊어지고 자본주의를 수호해야 할 경제활동구성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왜곡된 방향으로 세뇌(brainwashing)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 힐링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어떠한 과정을 통해 떠들썩한 사회 현상의 주류(mainstream)로 자리매김했는지에 대해 논의해보자. 해당 현상의 과정을 분해해보면, 이것 역시도 사회 경제 구성원의 공동 목표가 아닌 사익을 위한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요, 효율적인 시장경제활동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리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각 분야에서 이른바 대가(大家)라 불리며, 존경받을 만한 저명한 인사들이 나와서 강연을 한다. 물론 이러한 유명인사들이 마이크를 잡고 서 있는 무대의 대관, 출판, 홍보 등의 각종 비용은 보통 대기업에서 후원하는 것이다. 만약 힐링(Healing)이라는 문화의 시작점에서, 홍보에 관련된 마케팅 없이 외딴 시골에서 이러한 강연이 열렸다면 대중 및 언론 매체 등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여 2가지 경제 현상을 분석할 수 있다. 첫째로, 각 분야의 최고라 불리는 유명인사들은 과거 자신의 위치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서서 대중들에게 멋진 강연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흔히 성공한 사람들을 우러러 볼 때,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이는 바로 유명인사의 초라한 시작점은 망각하고, 성공한 현재의 모습에만 집중한다. 실질적으로 그들 역시 치열한 자본주의의 경쟁사회 속에서 자생력을 바탕으로 성장하면서 타인에게는 찾을 수 없는 암묵적(tacit)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 그들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꿀을 축적했던 꿀벌의 구성원 중 하나인 것이다.

  

  둘째로, 유명인사의 강연을 후원하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이 스폰서 획득을 놓고 경쟁한다는 사실이다. 후원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후원금 이상의 홍보효과를 누려야하므로 언론 매체를 동원해 대·내외적으로 전략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것 역시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기업이 살아남는 정당한 방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덕분에 출판, 광고, 저작권 산업 관련 분야에서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출판 업계와 광고 분야의 발전을 가져다주는 유인(誘因)이 된다. 시장경제질서를 기초로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관련 기업들의 상업적 전략은 지극히 당연한 행위이다. 1시간 동안 강연자들의 강연을 들으며 감명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강연을 들은 사람들이 위의 사실을 알게 되면 혼란스러울 것이며 심지어 시간이 아까웠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부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활동에 대한 유인(誘因)’지극히 자연스러운 경쟁 활동에 대한 새로운 세뇌(brainwashing)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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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은 무분별한 힐링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생력과 경쟁에 대한 유인(誘因)을 상실하게 한다. 자본주의에서의 자연스러운 경쟁에 대한 환멸은 자본주의, 대기업, 시장질서에 대한 하는 정서를 가져오게 된다. 자본주의에서는 사회주의와 다르게 경쟁을 통한 사적 재산권이 인정된다. 사회 구성원이 유인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게 되면, 부를 축적할 수 있다. 개인의 목적만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결국에는 국가의 발전으로까지 귀착된다.


  자본주의와 반대되는 이념은 사회주의는 그렇지 않다. 재산권이 국가에 귀속되므로 자신이 노력한 만큼 분배받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사회 구성원들은 노동에 대한 유인(誘因)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국가 발전의 퇴보를 가져오게 되고 결국은 꿀벌들의 최후처럼 구성원 전체가 공멸하게 되는 비극을 낳는다. 과거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북한, 소련 등의 국가가 이를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단순한 힐링 열풍을 시작으로 경쟁 없는 사회에 대한 우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까지 이어가는 필자의 논조(論調)에 대해 독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갓난아기와 노쇠한 노인들은 초가을의 소슬바람에도 독감이 들며 생명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하물며 과도한 힐링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당사자들은 다름 아닌,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수호해야 할 필자를 비롯한 청춘들이다. 힘이 드는 시기인 만큼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갈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적절한 마음의 치유와 경쟁을 위한 재충전은 인간을 동기부여하게 하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효과를 가져 온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지나친 힐링문화1보 후퇴 한 뒤, 본래의 위치로 전진하게 할 기본적인 자생력까지 잃게 하고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적절한 예로써, 결코 옳지 않은 사회풍조이다. 심지어 이러한 도가 지나친 사회 풍조에 대해, 국가 발전을 위한 옳은 방향으로 지도해주어야 할 정책 입안자들은 정권확보를 위해 이를 악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도모하기 위해 최소한의 역할만을 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을 위한 힐링은 곧, 경제민주화"라는 감언이설(甘言利說)로 힐링의 본원적인 좋은 의미까지 왜곡하며, Jupiter()의 역할까지 맡으려 한다.


  이렇듯 처음에는 한 집에만 붙은 불을 쉽게 물바가지로 끌 수 있지만, 다른 속내를 가지고 지켜보던 제 3자가 이웃을 돕는답시고, 기름을 부어서 불은 옆집에도 붙게 되고, 그 동네 전체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다. 불난 집 주인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져 겉보기에 비슷한 물과 기름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불난 집 주인이 바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이념에 갇힌 국민이 아닐까 싶다. 물과 기름을 현명하게 분별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정책입안자들 까지도 불을 붙인 우리 사회의 과도한 힐링문화는 이미 본원적인 긍정적 기능을 상실했으므로 이제 접어두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국민에 대한 힐링이라는 명목 아래 경제민주화,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 만약 지금의 나약한 힐링문화가 지속되어 경제민주화, 무분별한 무상복지의 개념과 함께 간다면, 인간은 자생력을 잃고 국가의 입장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비용의 증가는 국가 부채를 증가시키고 국가가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을 경우, 그리스와 남유럽의 국가들처럼 국가의 존폐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은 시장경제질서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기본 프로세스를 명심하고 작금의 세태를 경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사회에 만연한 힐링문화 역시, 기업과 개인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의 이기적인 경제활동의 결과물인 것을 필자는 본론에서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대중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며 끊임없이 지속되어야만, 지금까지 누려온 번영을 미래에도 더욱 발전시켜야만 더 큰 번영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되새길 수 있다. 따라서 기존의 힐링이라는 나약한 이름 아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환멸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꿀벌의 우화에서 꿀벌들은 정직하고 도덕적이며 공평한 사회를 늘 꿈꿔왔다. Jupiter ()이 간절한 그 소원을 결국 들어주었지만, 그들이 꿈꾸던 장밋빛 사회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꿀벌의 사회는 처참하게 몰락하게 된다. 인류의 문명 발전단계에서 이와 같은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 영위하는 최소한의 문명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때 번영을 누렸던 꿀벌들과 같이 인류의 강한 자생력, 경제활동에 대한 유인(誘因), 사리사욕이 오늘날 최첨단 기술시대를 도래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사회 전반의 경제 주체의 책임과 역할을 충분히 견지할 수 있다. 정부는 꿀벌 나라의 신()Jupiter처럼 전지전능할 수 없다면, 꿀벌 각자가 꿀을 열심히 모으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각각의 꿀벌들은 본능적으로 개인의 욕심에 따라 열심히 꿀을 축적하는 것에 노력을 한다면, 모두가 정직, 공평하고 도덕적이길 바라던 허망한 유토피아적 미래보다 더 큰 번영과 발전을 반드시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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