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전유물인가. 일상이야기


#1

출장을 와서 술을 꽤나 먹었다.
만취 상태로 글을 씀과 동시에,
점점 밤바람 차가워짐만 느끼는 밤이다.

#2



“의자왕이 생각보다 성군이었어요,
다만 승자의 기록에 남겨진 의자왕은 초라한
왕 이었을뿐...”

이라는 말을 최근, 한 때 역사 선생님을 꿈꾸던 친한 친구가 이야기하였다. 가끔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일반 직장인 치고는 꽤나 역사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음을 의자왕에 대한 평가를 놓고 알 수가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의자왕에 대한 후세의 기본평가는 백제 충신의
충언을 무시한 채, 향락에 빠져 민심을 바로 잡지 못하고 궁녀들과 놀아나다가 끝내 백마강, 황산벌전투를 마지막으로 백제의 마지막을 슬프게 마무리 지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삼천궁녀 일화의 사실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그 다음 세대의 기록으로만 학습하고
느끼며, 근대 수정된 역사를 보고 배울 뿐.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의자왕은 훌륭한 사람이다.

백제왕족과 신라왕족의 피가 섞여 어린시절부터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인물이다.




백제 최고의 장군 계백, 지략가 성총-흥수를 곁에
두고 민심을 바로 잡고 아름다운 문화를 피워냄과 동시에 신라 남부의 30여개 성을 정복하며 왕으로서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였다.
(물론 무왕의 왕권 강화 정책을 이어받는동안 부작용도 있었음.)

약 20여 년 이라는 꽤나 긴 세월을 왕으로 재위하면서... 다만, 초심을 잃은 시기에 충신들을 무시하고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순간만을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각종 전투 등에서 수세에 몰리며 전의를 상실하는 시점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될대로- 라는 식의 마지막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적어도 한 나라의 왕으로서는 말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백제는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슬픈 국가이다.

한 동안 황산벌의 계백 장군의 지략과 용맹함에 대한 생각만 하다가, 이따끔씩 의자왕이 떠오르는 것은 그러한 애틋한 여운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한 여운이 들게끔 하는 것 역시,
어찌보면 승자의 역사서에 쓰여진 그들의 모습들을 듣고 배우며 느끼는 것 때문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서를 쓰는 것에 있어서는,
한 세대로는 부족하다. 고쳐쓰고 또 누적된다.

근대 위인 및 저명한 이에 대한 것 역시,
새로운 정권이 바뀔 때 여-야에 관계없이 정세에 유리한 입장에서 공-과, 치적들을 기록하고 대중들에게 물음표를 던지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국사교과서 수정 작업 등과 같은 일련의 일들도 모두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한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고쳐야 하나, 미디어가 발달하고 민중이 똑똑해지며, 엎치락 뒷치락 하는 과정에서 현세를 살고 있는 인간은 정확한 판단에 한계가 있다. 후세가 그나마 객관적 평가를 해줄 것이다.

고대, 근대 역사를 통해 또 배우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낀다.

아무리 신기술, 의학이 발달하더라도 100세 넘기기 힘든 이 시대에도.. 이해관계에 얽혀 실록의 붓을 잡으려 한다.

한 마디로...

기나긴 레이스 끝의 승자는
그리도 위대해보이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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